술의 맛은 가격과 상관이 있을까?
스탠퍼드 대학교 맥코널 교수는 맥주 애호가 60명을 불러서 3개의 맥주를 마시게 한 뒤 점수를 매기도록 했습니다. 사실 3개의 맥주가 모두 똑같은 맥주였고 라벨에 적힌 가격만 달랐습니다. 실험 참여자들은 매일 한 명씩 맥주를 마신 다음에 가장 맛이 없으면 빵점부터 굉장히 맛있으면 4점까지의 점수를 주었습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참여자 전원이 맥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애호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매긴 점수는 라벨에 써진 가격과 비슷했습니다. 예를 들어 라벨에 적힌 가격이 각각 1달러, 2달러, 3달러면 1.5점, 2점, 2.5점 정도의 점수를 매겼습니다.
하트퍼드셔 대학 심리학과에서도 이와 비슷한 실험이 있었습니다. 심리학과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는 일반인 578명을 대상으로 7천원짜리 싸구려 와인과 5만원짜리 와인을 넣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습니다. 와인 시음자에게 어느 쪽이 더 비싼 와인인지 맞혀보라고 했습니다. 이번엔 사람들이 더 비싼 와인을 구분해 냈을까요? 아쉽게도 비싼 와인을 구분해 낸 사람은 전체 실험자의 50%였습니다. 둘 중 아무거나 하나를 고른 확률이니까 사실 사람들도 잘 몰랐던 것입니다. 술뿐만이 아니라 다른 음료도 마찬가지 있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에너지 음료로 비슷한 실험을 해도 앞서 말씀드린 실험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위 사례에서 보이듯 인간의 인식은 정확하지 않고 가격 등 주변 것들에 영향을 받습니다. 여기서 어떤 것에 얼마만큼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내용은 앵커링에 의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앵커링 효과
앵커링 효과는 심리학자이자 행동 경제학에 창시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가 실험을 통해 증명한 효과입니다. 앵커링은 배가 닻을 내리면 닭과 배를 연결한 밧줄의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듯이 처음에 인상적이었던 숫자나 사물이 기준점이 되어서 그 후 판단에 왜곡을 주는 현상입니다. 이런 앵커링 효과를 증명해 줄 여러 가지 실험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앵커링 효과를 증명해 줄 여러 실험을 알아봅시다.
1. 실험 참가자들은 1부터 100까지 있는 행운의 바퀴를 돌려서 나온 숫자가 유엔에 가입한 국가 중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보다 많은지 적은지를 추측해 보라는 다소 생소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숫자 30 나왔다면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이 30보다 많은지 적은지를 추측해 보는 식이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대부분 행운의 바퀴를 돌려 우연히 얻은 숫자와 비슷한 수치로 질문에 답을 했습니다. 앵커링 효과 또는 정박 효과는 배가 닻을 내리면 배를 연결한 밧줄에 범위 내에서 움직일 수 있듯이 인간의 사고와 처음 제시된 기준에 고정돼 그 후의 판단에 왜곡 혹은 편파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으로 이 실험 역시 관련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룰렛을 통해 뽑은 숫자가 앵커 역할을 한 것으로 앵커링 효과를 지지하는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2. 여러 실험 참가자를 모아놓고 아래와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당신은 행복합니까?" 두 번째 "최근에 당신을 얼마나 데이트 했습니까?" 여기서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을 한 다음에 '당신은 얼마나 데이트했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이 두 답변 간에 상관계수는 낮았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행복하다고 해서 데이트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데이트를 적게 하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근데 질문에 순서를 거꾸로 해봤더니 신기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최근에 데이트를 얼마나 했는지 물어보고 행복한지를 물어봤더니 데이트를 많이 할수록 행복해지고 데이트를 못하면 불행해진다고 답변하는 비율이 높았던 것입니다. 본래 행복한지 아닌지는 데이트 여부로만 결정되지는 않지만 첫 번째 질문으로 인해서 데이트를 많이 하면 행복하다는 인식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앵커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앵커링 효과는 특히 마케팅 영역에서 유용하게 활용이 됩니다. 명품 매장에 유리창에 몇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가방을 진열해 놓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판매자는 해당 가방이 실제로 구매로 이어지는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해당 금액이 기준점으로 작동해서 상대적으로 더 저렴한 다른 제품들에 대해서 소비자가 살만한 것으로 인지하는 것을 노리는 것이죠. 비슷하게 마 그래서 할인가로 판매되는 제품들 역시 기존의 가격에 대한 정보가 기준점 역할을 하여 소비자들을 더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심리적인 안도감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먼저 제시된 조건이 기준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소 높은 조건을 제시하여 상대방의 기준점을 높인 다음에 중간지점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술에 맛도 똑같습니다. 사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데 가격이나 외관 맛있는 장소의 분위기에 따라서 본질을 다르게 느껴버리는 것입니다. 즉 대상의 주변부의 환경에 따라서 본질이 왜곡될 수가 있다는 것이죠.
앵커링 유용하게 사용하기
그렇다면 이런 앵커링을 어떻게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을까요? 답에 대한 힌트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시피 파블로프는 개들에게 밥을 주기 전에 종소리를 울렸습니다. 원래 개들에게 종소리는 밥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지만 지속적으로 밥을 먹기 전에 종소리를 울림으로써 종소리는 밥과의 연관이 생기게 됩니다. 인간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이성과 길을 걷고 있는데 63빌딩이 보입니다. 그때 우리가 만약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63빌딩만큼 커"라고 한다면 상대방은 63빌딩을 볼 때마다 우리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앵커링은 사물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인형을 선물하면 그 인형을 볼 때마다 우리의 생각이 떠오르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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