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에 가벼운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새끼 오리 이야기
어느 한 시골 마을에서 작은 새끼 오리가 태어났다. 그 오리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장화를 신은 농장주인의 두 다리였고 새끼 오리는 본능적으로 그 다리에 이끌려 농장주인을 따라다녔다. 새끼 오리는 농장주인의 다리가 처음으로 본 움직이는 물체였기에 농장주인에게 애착을 느끼고 졸졸 따라다녔다.
이 이야기는 콘라트 로렌츠가 처음으로 증명한 오리의 '각인 현상'이다.
각인 현상이란 새끼 새들이 알에서 깨어나 며칠 안에 움직이며 일정한 소리를 내는 물체(대체로 어미 오리)를 졸졸 따라다니는 현상이다.
각인은 일종의 학습으로 새끼 오리에게 어미 오리의 움직임이 노출되기 전에는 없던 연상이 생겨난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학습 형태는 사전에 프로그래밍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위에 이야기에서 보면 사고는 선천적이라는 결론이 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인간의 아닌 오리의 이야기긴 하지만 인간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행동이 젖을 빠는 것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에 영국 계몽주의 철학자 존 로크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존 로크(경험주의)
존 로크는 사고는 선천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생각과 사고,개념을 미리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대신 세상에서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을 함으로써 지식을 얻는다.'라고 주장한다. 로크에 따르면 마음은 태어날 때 '빈 서판(라틴어로는 '타불라 라사' tabula rasa)'이다. 이러한 로크의 생각을 '경험주의'라 한다. 우리는 세상을 전혀 모른 채 태어나지만, 감각 체계를 분명 지니고 있다. 감각 체계의 근본적인 제약이 뒤따르긴 하지만 우리는 경험하고 관찰하며 세상을 배운다, 말하는 법과 읽는 법,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법 등을 배운다.
이러한 로크의 사상은 데이비드 흄의 연구에 의해 더욱 발전했다.
데이비드 흄(경험주의)
흄은 '우리가 귀납적인 과정을 통해 세상에 관하여 판단 및 예측과 추론을 하는 법을 배운다.'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귀납 덕분에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고, 우리는 그런 본능이나 습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즉 마음은 완전히 빈 서판이 아니고 규칙을 지닌 서판,기억을 지닌 서판이자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인반화할 수 있는 서판이다.
흄은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사고는 후천적이라는 주장을 했으므로 서판에 있는 본능이나 습관(이 글에서는 각인 현상)은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위 경험주의 사상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사고는 후천적일까?
우리는 이번에는 같은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이지만 사고는 선천적이어서 태어날 때부터 내재하여 있다고 여긴 르네 데카르트(tmi:데카르트는 계몽주의의 창시자로 간주한다)에 대하여 알아보자.
르네 데카르트(생득주의)
데카르트에 따르면 몸과 어느 정도 별개인 정신은 신으로부터 이상적인 지식을 직접적으로 전달받고, 우리는 성찰과 시간을 통하여 이 진리를 드러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경험으로 얻은 지식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나는 단편적이고 우연한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데카르트는 가톨릭교도였고 그에 따라 그는 신이 만사에 관여하는 중세식 사고의 틀 안에 맞는 이론을 내놓아야 했기 때문에 진리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사고가 선천적이다, 또는 후천적이라고 결론 내리기는 힘들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생득주의 대 경험주의는 누구도 이것 아니면 저것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가지 모두 우리의 발상과 개념형성,정신적 발달 그리고 심리적 과정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인식과 사고의 일부 측면은 후천적인 과정으로 연구하는 것이 타당하고 또 일부는 선천적인 과정으로 연구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유전자 및 생물학적 제약(선천)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심리적 과정과 능력이 있는 반면에,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는 여러 가지 규칙과 제약이 있는 빈 서판이란 뜻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즉 제약이 있는 빈 서판을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잘 채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See Joy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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