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설명하기 힘든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장소인데 이전에 한 번 가봤던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꿈속에서 본 사람인 것 같거나, 어느 날 꿈속에서 할아버지가 나타났는데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이 이런 주제를 자주 다루지는 않지만, 이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그가 바로 칼 융이다.
칼 융과 동시성
융은 이러한 현상을 ‘동시성 현상’이라고 불렀다. 동시성 현상은 철학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고, 심리학이라고 하기에도, 과학이라고 하기에도, 신학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개념이다. 이것저것 뒤섞여 있는, 약간은 오컬트적인 이야기다.
‘오컬트적’이라는 표현에 대해 유물론을 좋아하는 분들은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시성 현상을 사이비 이론이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융과 같은 심리학의 거장이 주장한 이론이기도 하고, 데이비드 봄이나 파울리 같은 물리학자가 다룬 개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흥미로운 이론이니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먼저, 동시성 현상을 정의해 보자. 동시성 현상이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것 같은 두 개의 사건, 예컨대 정신적 사건과 물질적 사건이 어떤 관련이 있는 것처럼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첫 번째 사례는 융의 사례이다. 융은 자신의 진료소에서 한 환자의 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환자는 꿈에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황금색 풍뎅이 모양의 보석을 선물로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진료소 창문에 황금색 풍뎅이가 부딪히는 것이었다. 융은 그것을 잡아 환자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두 번째 사례는 17세기 스웨덴의 신비사상가인 스웨덴보리의 이야기다. 그는 천국과 지옥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능력과 천리 밖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1759년 7월 19일, 스웨덴보리는 외국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400km 떨어진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큰 화재를 보았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에게 화재의 상황을 정확히 묘사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실제 상황과 일치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동시성 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융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성 현상이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어떤 작용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질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인과관계를 가진다. 즉, 하나의 사건이 원인이 되어 다른 사건이 결과로 나타난다. 또한,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이 사과를 던지면 사과는 지금 여기에서 떨어진다. 사과가 미국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융은 정신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사이에는 이러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환자의 꿈속에서 나타난 황금색 풍뎅이를 융이 실제로 볼 수 있었고,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화재를 400km 떨어진 곳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융이 말하는 정신은 ‘무의식’을 의미한다. 의식은 감각과 경험을 통해 세계를 부분적으로 인식하지만, 무의식은 세계를 전체적으로 인식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무의식이 의식에게 전체적인 방향을 알려주기 위해 신호와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우리는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공간적으로는 앞뒤, 좌우, 위아래로 이동할 수 있고, 시간적으로는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간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독립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4차원 시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를 ‘시공간 연속체’라고 한다.
데이비드 봄은 동시성 현상을 ‘숨겨진 질서’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숨겨진 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꿈속에 나타난 황금색 풍뎅이가 실제로 나타났고, 스톡홀름에서 난 화재를 먼 거리에서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리해 보자. 우리는 가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두 개의 사건이 마치 서로 연관이 있는 것처럼 동시에 일어나는 경험을 한다. 융은 이를 동시성 현상이라고 불렀으며,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무의식 차원에서 어떤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데이비드 봄은 이를 ‘숨겨진 질서’로 설명했으며, 우주의 모든 사건이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오늘 다룬 내용은 사람마다 의견이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숨겨진 질서’나 ‘동시성 현상’, ‘홀로그램 우주론’ 같은 개념이 허무맹랑한 과학적이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이런 이야기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생각은 어떠냐고?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단정 지을 만큼 충분히 알지 못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동시성 현상과 같은 신비한 현상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단순한 착각이나 우연이라고 봐야 할까?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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