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가 문득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럭저럭 흘러갔지만 이상하게 텅 빈 피로감이 남는다. 아마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게 조금 힘든 거 같다.
어릴 땐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다 자유로운 줄 알았다. 누가 막는 거 없이 밤늦게까지 놀아도 되고, 먹고 싶은 건 다 사 먹을 수 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돼보니 자유라는 건 늘 책임과 함께 왔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앞섰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었지만 혼자 감당해야 하는 침묵이 생겼다.
마냥 즐거운 자유와 오락의 시간이었던 밤은 고심과 회의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언갈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모든 걸 안고 갈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우선순위를 양보할 때도 많고 무엇보다,
이유 없이 아픈 마음을
그저 ‘괜찮아’라고 넘기며
조용히 묻어두는 법을 배우게 된다.
어른이 되며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무작정 좋아하던 것에 빠져드는 몰입력과,
햇살이 좋아 기분이 들떴던 날들,
길가에 핀 꽃 하나에 말을 걸고 싶던 마음.
그것들이 내 세상이었기에 그때는 그토록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은
잠시 멍하니 앉아 있을 때조차
이 시간 동안 뭘 하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도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누군가를 챙기고,
일을 해내고,
어떤 감정은 삼킨 채
묵묵히 견디며 나아간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쌓이면 문득 깨닫는다.
어른이라는 건
어릴 적 생각했던 모든 걸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걸 잘 해내지 못해도 꿋꿋이 살아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다 버텼다고 생각한 날,
누군가의 한마디에 울컥하는 이유는
아직도 내 안에 어릴 적 나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늘 위로받고 싶어 했고,
자기 마음을 들여다봐 주는 사람을 기다렸다.
이제는 그 아이를
내가 안아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흔들리고도
다시 내일을 살아낼 마음을 꺼내는 것.
그게 어쩌면,
가장 어른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제목:어른이라는 말
어른이라는 말
어릴 적엔
어른이 된다는 게
커 보이는 구두를 신고,
멋진 말만 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참아야 할 말을
삼켜야 할 때가 더 많다는 것
눈물이 차올라도
웃는 얼굴을 먼저 떠올려야 하고,
상처가 나도
그 자리엔 밴드보다
책임이 먼저 붙는다는 것
할 수 있는 게 많아진 대신
하고 싶은 건 줄어들고,
자유를 가졌지만
가장 불편한 나와 마주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래도 어른이 되었다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는 기댈 수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는 말없이 등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흔들리며 견딘 하루 끝에
나는
조용히 나를 안아준다.
수고했다, 오늘도.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스쳐간다(시) (0) | 2025.06.04 |
|---|---|
| 조용한 틈, 나를 마주하는 시간 (0) | 2025.05.30 |
| 무탈함이라는 기적 (0) | 2025.05.30 |
| 누워도 돼, (0) | 2025.05.29 |
| 도시의 틈, 고요한 숨결 (0) | 2025.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