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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스쳐간다(시) 처음엔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주고받고 사소한 일에 웃음을 나누었고 하루에 몇번이고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영웧히 계속되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작은 틈 하나에서 우리는 더 이상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조용히, 천천히 스쳐 갔다. 우리의 시간이 달라지기 위해 시작했다. 달라진 우리의 세상 속에서 때론 원망도 했다. 하지만 스쳐 간다는 건 때론 고의가 아니라 흐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삶이 바빠서, 마음이 어지러워서, 여유를 잃었기 때문에 멀어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저 바쁘니까 나중에 보자고 조금만 지나면 괞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고 괞찮음은 너를 기다려 주지 않았으며 우리는 그 사이에서 서로.. 2025. 6. 4.
어른이라는 말(시) 가끔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가 문득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럭저럭 흘러갔지만 이상하게 텅 빈 피로감이 남는다. 아마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게 조금 힘든 거 같다. 어릴 땐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다 자유로운 줄 알았다. 누가 막는 거 없이 밤늦게까지 놀아도 되고, 먹고 싶은 건 다 사 먹을 수 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돼보니 자유라는 건 늘 책임과 함께 왔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앞섰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었지만 혼자 감당해야 하는 침묵이 생겼다. 마냥 즐거운 자유와 오락의 시간이었던 밤은 고심과 회의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언갈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모든 걸 안고 갈 수.. 2025. 6. 3.
조용한 틈, 나를 마주하는 시간 낮에는 너무 많은 소리가 나를 휘감고 있다. 누군가의 말, 끊이지 않는 메시지, 해야 할 일들, 그리고 잔소리 같은 것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밤을 기다린다. 누구에게도 대답할 필요 없는 시간. 불빛을 조금만 줄이면, 세상이 사라질 것처럼 조용해지고, 그 안에서야 비로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다름 아닌, 내 마음속의 친구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 소리 내지 못한 말, 계속 미루던 말, 닿지 못한 그리운 말. 모든 것이 밤이라는 틈에서 조금씩 떠오른다. 그건 외로움 같기도 하고, 위로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붙잡고 있는 유일한 감정인지도 모른다. 혼자인 이 순간이, 결국 나를 살아가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조심히 또 조용히 받아들이게 된다.. 2025. 5. 30.
무탈함이라는 기적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특별한 하루’란 도대체 어떤 날일까. 아주 큰 기쁨이 찾아오거나, 어느 때보다 뛰어난 성취를 해낸 날일까?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만큼 번쩍이는 사건이 있어서 자랑스러운 날?그런 날이 의미 있는 걸까? 하지만 가만히 오늘 하루를 떠올려보니, 별일 없던 오늘 하루가 어쩌면 정말 가장 지켜내기 어려운 날이었다.그 걸 깨닫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바쁘게 움직이고,점심으로 좋아하는 메뉴를 먹고, 해가 지기 전에 집에 와서 맥주 한잔 하고,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했다는 것.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이런 하루가 사실은 삶의 대부분일 것이다.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평화 그 자체이지 않을까?우리는 때때로 극적인 순간만을 기억하려고 한다. 찬란한 것, 눈부신 것, 뜨거운 것만.. 2025. 5. 30.
누워도 돼, 요즘 따라 조금 피곤하다. 몸보단 마음이. 분명 잘 자고 있고, 밥도 먹고, 해야 할 일도 꽤 잘해 나가고 있는데, 무언가 계속 허전하고 무거운 돌을 가슴으로 안고 있는 느낌이 든다. 아는 목소리가 말을 건다. "요즘 잘 지내?" "응, 잘 지내지." 거짓은 아니다. 적어도 큰일 없이 잘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말 안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그냥 다 묻어버리게 되는 거다. "그냥 좀 힘들어." 이 말 하나가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가 그저 허전한 웃음으로 바뀐다. "넌 잘 이겨낼 줄 알았어." 이 말 안에는 따뜻함이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부담이 되기 위해 시작했다. 난 강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울 곳이 없던 사람이었고, 이겨낸 것이 아니라 그냥 버틴 것일 뿐인데... 혼자서 꺼져.. 2025. 5. 29.
도시의 틈, 고요한 숨결 늘 걷던 인도 사이 작은 틈에서 이름도 모르는 들꽃 하나가 피어 있었습니다. 바쁘게 지나치던 그 길에서 저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자동차의 소음과, 분주한 발걸음, 정해진 목적지로 밀려가는 도시의 리듬 속에서 그 조용한 생명은 이상하리만치 맑고 선명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네모 박스에 묶여 있었고, 저는 그 틈에서 조용히 눈을 뜨고 있는 자연을 마주했습니다. 도시는 모든 것을 빨리 지나가게 만듭니다. 길거리엔 광고가 넘치고,사람들은 대화보다 속도에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그 틈에서 만난 자연은, 아무 말 없이도 마음을 머물게 했습니다. 꽃 한 송이, 나뭇가지 하나, 길 위의 그림자처럼 드리운 한 줌의 햇살. 그 작은 것들이 오늘 저의 걸음을 늦추었습니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저는 한동안 잊고 있.. 2025. 5. 28.